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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사이토 히토리의 가벼운 인생론을 한국 40대 중개업 사장이 곱씹다

이 책을 펼치기까지 한 달이 걸렸습니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만 흘러갈 뿐이라고 했습니다. 책의 후반부 어디쯤에서 이 문장을 봤습니다. 사이토 히토리라는 일본 사람의 책입니다. 긴자마루칸이라는 건강식품 회사를 차린 분인데, 책 띠지에 일본 자수성가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책 안 사려고 했습니다. 자기계발서 코너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억만장자가 알려주는 인생 비법" 같은 띠지 문구가 살짝 부담스러웠습니다. 일본 책의 자기계발 카테고리는 한국 시장에서도 워낙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영역이라, 익숙한 메시지의 변주 정도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책상 한쪽에 그냥 놔뒀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사무실에 손님 끊긴 어느 평일 오후 잠깐 앉아 책을 펼쳤더니 1쪽이 그냥 술술 넘어갔습니다.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챕터가 5분이면 끝났습니다. 어떤 챕터는 한 페이지로 끝나기도 했습니다. 격언 모음에 가까운 구성이라 평론가 행세하면서 깊이 있게 분석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 챕터씩 끊어 읽으면서 "이 말 어디서 들어봤는데" 싶은 메시지가 너무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 하시던 잔소리, 가게 사장님이 술자리에서 흘리던 인생 한마디, 거래처 어르신이 점심 먹다 던지던 생활 철학 같은 게 한 권에 모여 있었습니다. 평론가가 아니라 서툰 독자 입장에서 이 책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고른 4개 질문이 자존, 습관, 인연, 죽음입니다. 하나씩 가봅니다.


자존이라는 단어를 40대에 다시 배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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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히토리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 중 하나가 "자기를 사랑해라"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돈도 그렇답니다. 자기를 깎아내리면서 번 돈은 결국 자기를 깎는 데 다시 쓰이게 된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한 페이지 짧게 끊어 쓴 격언 같은 글이라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에 사는 나발 라비칸트라는 분이 떠올랐습니다. 인도계 미국인 사업가인데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묶은 책이 한국에서도 꽤 팔렸습니다. 저는 가끔 들춰봅니다. 나발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행복은 욕망의 부재 상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이토 히토리는 자기 사랑이 출발이라고 하고, 나발은 욕망을 줄이는 게 행복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 다 결국 같은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뭘 더 가져와 채울 욕망 자체가 줄어든다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발은 온라인에 한 번 만들어 두고 알아서 굴러가게 만드는 쪽을 강조하고, 사이토는 사람 얼굴 보고 직접 쌓는 정을 강조한다는 정도입니다.


저한테 자존이라는 말이 가장 무겁게 박힌 자리는 일이 안 풀릴 때입니다. 일이 바닥을 치면 거울을 보기 싫어집니다. 전화 받을 때 목소리부터 작아집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인연을 가져올 수 없다는 이 책의 말이 그제야 좀 들립니다. 결과 숫자와 내 가치를 분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아직도 잘 못 합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비슷합니다. 요즘 하프마라톤 준비 중인데 페이스가 안 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운동화 끈 묶기부터 귀찮습니다. 안 뛰면 페이스가 더 안 나옵니다. 한번은 딸한테 짜증을 낸 날 저녁에 거울을 보는데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그날도 비슷한 자리였습니다. 결과랑 나를 잠깐 분리하지 못하면 며칠이 통째로 날아갑니다. 사이토 히토리 식으로 풀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과도 자기 편으로 못 만든다는 거겠죠. 책에 등장하는 일본 격언이 한국 40대 아저씨 일상에서도 거의 그대로 작동한다는 게 좀 묘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던지는 작은 인사가 1년 뒤 통장을 바꾼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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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이야기는 책 곳곳에 나옵니다. 사이토 히토리는 거창한 결단보다 매일 하는 작은 행동이 운명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하기, 웃으며 말 걸기, 고맙다는 말을 하루 열 번 이상 하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게 무슨 개혁 비법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머니가 어릴 때 하던 잔소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책으로 묶이면 좀 다르게 들립니다.


여기서 작은 게 쌓여서 더 크게 돌아오는 구조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어떤 행동이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그 행동을 강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인사 한 번이 그 자리에서 뭘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1년치 인사가 쌓이면 사람들 머릿속에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라벨이 붙습니다. 라벨이 붙은 사람한테는 좋은 일이 갑니다. 좋은 일이 가면 다시 인사할 일이 늘어납니다. 작은 게 더 큰 걸 만들고, 큰 게 다시 작은 걸 더 자주 굴리는 모양입니다. 사이토 히토리가 책에서 풀어쓴 격언 모음을 다른 말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저는 6월 7일 하프마라톤 준비 중인데요, 훈련도 같은 구조라는 걸 요즘 몸으로 느낍니다. 하루 10킬로 뛴다고 그날 페이스가 바로 빨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달치 훈련이 쌓이면 어느 날 갑자기 페이스가 한 단계 내려갑니다. 거기서 또 자신감이 붙으면 훈련 강도를 올리고, 강도가 오르면 페이스가 또 내려갑니다. 책 읽으면서 "아, 이거 마라톤이랑 똑같은 거였구나" 싶었습니다. 의심하면서도 일단 매일 하는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사이토 히토리가 책에서 거창한 결단을 깎아내리고 매일 하는 작은 행동만 칭찬하는 이유가 이거 아닐까 싶습니다. 결단은 한 번이지만 루프는 매일 돌아가니까요.


베푸는 사람한테 운이 따른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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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인연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가 꽤 길게 이어집니다. 핵심은 이타심입니다. 받기 전에 먼저 줘라, 베풀어라, 이 사람한테 뭐 떼먹을까 말고 뭐 도움 줄까를 먼저 생각해라.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부분 읽으면서 살짝 의심이 들었습니다. 무한 베풂은 결국 호구 잡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책의 모든 메시지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이 챕터를 다른 각도에서 읽게 해준 게 사람 사이에 쌓이는 믿음이라는 거였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일이 가볍게 굴러갑니다. 매번 처음부터 상대를 의심하면서 시작하면 피곤해서 같이 못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은 일에서 한 번 같이 해보고, 괜찮으면 좀 더 큰 걸 같이 합니다. 한 번 쌓인 믿음이 있는 사이에는 일이 빠르게 굴러갑니다. 사이토 히토리가 말하는 베풂은 결국 이 믿음을 천천히 쌓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게 자주 베풀면 상대가 나를 알아갑니다. 알아간 사이에서 사람과 일이 모입니다. 호구 잡히는 사람은 베푸는 양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 없이 한 번에 크게 줘버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작게 시작하고, 상대 반응을 보고, 거기서 천천히 늘려가는 게 책에서 말하는 인연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매일 느낍니다. 동네 친구도 비슷합니다. 처음 만나서 그날 바로 속 얘기 하는 사이는 거의 없습니다. 한 번 같이 밥 먹고, 두 번째에 좀 더 길게 이야기하고, 세 번째쯤 돼야 진짜 친구가 됩니다. 러닝 크루도 똑같습니다. 처음 같이 뛰는 분한테 다음 주에 또 나오시라고 부담 주면 안 옵니다. 그냥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만 하고 돌아서면 신기하게 다음 주에 또 나오십니다.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만난 분이 그날 바로 큰 결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번 가볍게 보고 가시고, 두 번째 오실 때 좀 더 길게 이야기하고, 세 번째쯤 돼야 일이 됩니다. 그 사이사이 제가 떼먹을 생각만 하면 두 번째가 안 옵니다. 작게 도움 드리는 게 손해 같은데 1년 뒤에 보면 그분이 다른 분을 데려옵니다. 책에서 말하는 베풂이 천천히 커져서 돌아온다는 게 진짜 같습니다. 빠르면 가짜고요.


죽음을 의식하면 오늘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늦게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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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서 사이토 히토리는 죽음을 자주 입에 담습니다.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은 진짜 사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지면 일상의 우선순위가 강제로 다시 정렬된다는 거죠. 이 챕터가 책 제목 "어떻게 살 것인가"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자리입니다.


이 메시지가 동양 격언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메멘토 모리라는 서양 전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고대 로마 장군들이 개선식에서 옆에 노예를 세워두고 이 말을 반복하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너도 결국 죽는다, 그러니 지금 누리는 영광에 너무 취하지 마라. 사이토 히토리가 일본 격언으로 풀어쓴 메시지를 라틴어 한 줄로 압축하면 거의 같은 말이 됩니다. 동양과 서양이 인생 후반부에서 만나는 지점이 죽음 의식이라는 게 좀 신기합니다. 두 전통 다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시간을 선명하게 만드는 도구로 씁니다.


저는 9살 딸이 있는데요, 딸을 보면서 메멘토 모리가 추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제가 마흔둘이고 딸이 아홉이니까 딸이 마흔둘이 되면 저는 일흔다섯입니다. 산술 계산만 해도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게 보입니다. 책 덮고 나서 그날은 일찍 들어가서 딸이랑 보드게임 한 판 했습니다. 책이 시킨 거라기보다는 책이 잠깐 정렬해준 우선순위 같은 거였습니다. 이 메시지는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 사이 거리가 큰 종류라 평생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권하고 누구한테는 안 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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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어려운 단어가 없고, 챕터가 짧고, 한 챕터씩 끊어 읽기 좋습니다. 가벼운 만큼 깊이를 파고드는 분에게는 살짝 아쉬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권하고 싶은 분은 자기계발서를 처음 읽기 시작하는 분, 한 권 끝까지 못 읽고 던지는 분, 출퇴근 시간에 짧게 읽고 싶은 분입니다. 격언 모음 같은 구성이라 30분만 펼쳐도 챕터 5~6개를 끝낼 수 있습니다. 40대인 저처럼 인생 중반에 한 번 정렬을 다시 하고 싶은 분한테도 잘 맞습니다. 자존, 습관, 인연, 죽음 같은 키워드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로 쓰기 좋습니다.


반대로 권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리적 근거와 출처를 따져가며 읽고 싶은 분, 사례와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책을 좋아하는 분한테는 살짝 가벼울 수 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격언 대부분이 저자의 경험과 직관에서 나온 말이라 "왜 그런가"를 따지면 답이 좀 빈약합니다. 이런 분이라면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 예를 들면 나발 라비칸트의 글을 묶은 책이나 좀 더 두꺼운 동양 철학 입문서가 더 잘 맞을 겁니다. 또 책에서 말하는 "베풀면 다 돌아온다" 식의 메시지에 거부감이 큰 분도 잘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써먹을지로 풀어쓰면 이렇게 됩니다. 첫째, 자존 챕터는 일이 안 풀리는 날 다시 펼치기 좋습니다. 한두 페이지만 읽어도 호흡이 정리됩니다. 둘째, 습관 챕터는 새 루틴을 시작하는 첫 주에 읽으면 좋습니다. 작은 행동을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셋째, 인연 챕터는 사람 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습니다. 단, 천천히 쌓는다는 관점으로 읽어야 호구 안 잡힙니다. 넷째, 죽음 챕터는 1년에 한 번, 생일이나 연말에 다시 펼치면 좋겠다 싶습니다. 일상에 너무 묻혀 있을 때 잠깐 한 발 물러서서 보게 해줍니다. 일본의 자수성가 사업가가 무겁지 않은 톤으로 풀어쓴 책이라 부담 없이 곁에 두기 좋습니다. 다 읽고 나면 인생 비법을 받았다기보다는 어머니 잔소리를 정중한 책으로 다시 들은 기분입니다. 그게 이 책의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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