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 시장을 흔든 세 가지 사건을 따로 떼어 보면 서로 무관해 보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휴전,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57조, 17년 만의 환율 1500원 돌파. 한 달치 뉴스를 다 읽고 나니 셋 다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누가 인프라의 통제권을 쥐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이번 월간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 Top 10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호르무즈 헤드라인을 휴전 협상 변수로만 읽었습니다. 트럼프 발언 한 마디에 유가가 8% 출렁이고 코스피가 4% 빠지는 흐름이 익숙했습니다. 시장은 "전쟁이 끝나면 유가는 60달러대로 돌아온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습니다.
숫자를 다시 봤습니다. 이란 의회는 통과 선박당 1달러 통행료 부과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루 2,000만 배럴 기준 연 73억 달러의 새 수익원입니다. 휴전 합의 후에도 일일 통과 선박은 평소 100~135척에서 15척 이하로 제한됐습니다. 카타르 LNG 시설 복구에는 수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IEA 총장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합친 것보다 심각한 세계사적 위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겉보기엔 중동 전쟁 뉴스 같지만 실은 전후 80년간 미국이 보장해온 해상 안보 체제가 종료되는 신호였습니다. 트럼프의 "당신들 배는 당신들이 지키라"는 발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호르무즈가 봉쇄에서 풀려도 통행료가 제도화되거나, "이 해협은 언제든 인질로 잡힐 수 있다"는 인식이 영구히 깔립니다. 진짜 청구서는 유가가 아니라 공급망 비축 비용·다변화 비용·보험료의 영구 상승으로 청구됩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후에도 유가는 결국 안정됐습니다. 그 사이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만들었고 일본은 30년간 에너지 다변화를 끌고 갔습니다. 사건은 끝났지만 구조가 바뀐 것입니다. 한국이 9조 원 들여 프랑스와 핵심광물·해상수송로 협정을 맺은 것, 호주가 미국에서 2만 1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경유를 운송하기로 한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57.2조 원입니다. 전년 동기 6.7조 대비 755% 상승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영업이익 34조에서 40조 사이로 추정되며 D램 영업이익률이 80%대로 올라섰습니다. 헤드라인은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수혜"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같은 분기에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49조 원 순매도했습니다. 학습된 의심이 깔려 있습니다. 2017~2018년 반도체 사이클의 끝이 18개월 후 가격 폭락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번에도 같은 사이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2026년 사이클은 수요 함수의 기울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오픈AI API 토큰 사용량은 2025년 10월 분당 60억 개에서 분당 150억 개로 5개월 만에 150% 늘었습니다. 한 번 쓰기 시작한 AI 에이전트는 분당 수천 개 토큰을 소비합니다. 글로벌 빅테크가 메모리 공급량을 선수주 방식으로 잡고, AI 추론 비용의 70%가 메모리 대역폭에서 발생합니다.
겉보기엔 반도체 실적 회복 같지만 실은 메모리가 IT 부품에서 AI 시대의 전기·수도 같은 인프라로 격상된 사건이었습니다. 영업이익 57조는 그 권력의 가격표일 뿐입니다. 호르무즈가 단순 해협이 아니라 인프라 통제점이듯, HBM과 DDR도 단순 부품이 아니라 인프라 통제점이 됐습니다.
다만 이 명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 가지는 의심해야 합니다. 삼성의 HBM4 수율은 60% 미만으로 추정되고, 중국 CXMT와 YMTC가 빠르게 추격 중인 기업입니다. 비소멸성 자원인 기술과 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집니다. 이번 호황의 끝은 가격 폭락이 아니라 한국 점유율 잠식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사건이 제일 헷갈렸습니다. 4월 1일 WGBI 첫 편입으로 11월까지 8개월간 월 9조 원씩, 총 75조 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예정입니다. 동시에 원·달러 환율은 1530원을 돌파해 17년 만의 최고치였습니다. 한쪽은 호재, 한쪽은 위기. 두 신호를 따로 읽으면 모순입니다.
3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16.1% 상승해 1998년 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원유 수입가격은 88.5% 올랐습니다.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비중은 59.3%, 1인당 평균 대출 3.9억 원입니다. 실물 충격은 분명합니다.
한국은행은 "환율 수준이 아니라 외화 유동성이 핵심"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신현송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기준금리 2.50%는 중립금리 추정 범위의 중간"이라고 답했습니다. 1997년·2008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때는 "달러를 못 구함"의 위기였고, 지금은 "달러 가격이 비쌈"의 문제입니다.
겉보기엔 환율 1500원이 외환위기 재현 같지만 실은 통화정책 자유도는 그대로 두고 비용 함수만 바뀐 정책 인센티브의 재배열이었습니다. WGBI 편입은 환율 수준을 끌어내리지 못합니다. 채권 자금은 헤지된 자금이라 외환시장에 즉각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향은 바꿉니다. 한국 자본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에 외국인 장기 투자자가 영구히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거시 안정이 미시 파국을 가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영업 다중채무자 60%에 가까운 비중은 평균이 멀쩡해도 개별이 무너지는 전형적 구조입니다. 한 번의 파산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세 사건을 늘어놓고 보면 한국 경제는 묘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메모리에서는 인프라 통제권자이고, 에너지와 통화에서는 가격 수용자입니다. 글로벌 빅테크에 가격을 부르는 동시에 중동의 통행료 결정과 미국의 금리 결정에 가격을 받는 위치입니다.
이 비대칭은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그대로 옮겨야 합니다. 반도체 인프라화에 베팅한다면 본체(삼성·SK)뿐 아니라 전력기기·소재·후공정 같은 2차 수혜로 분산해야 합니다. 에너지 안보 재편에 베팅한다면 원전·재생·전력기기·국방·조선이 후보입니다. 환율과 자영업 충격에는 거시 안정에 의존하지 않는 개별 안전판이 필요합니다.
기업 단위로 보면 인프라 공급자는 글로벌 가격 결정자가 되고, 인프라 수용자는 글로벌 가격 변동의 수신자가 됩니다. 같은 한국 경제 안에서도 두 위치는 점점 멀어집니다. 평균을 보지 말고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자기 의심을 한 번 적어두겠습니다. "구조 재편"이라는 단정은 사이클 정점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2000년 닷컴 정점에서도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같은 강도로 있었습니다. 미국 셰일 증산이나 중국·인도의 이란 우회 거래로 공급 충격이 빠르게 흡수될 수도 있습니다. 통행료 제도화는 국제법적 반발로 6개월 안에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토큰 사용량 150% 상승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가정도 강한 외삽입니다. 구글 터보퀀트 같은 메모리 절약 기술 한 번이면 수요 함수 기울기가 바뀝니다. 3월 25일 발표 직후 코스피 4.26% 급락이 그 예고편이었습니다.
WGBI 자금 효과도 과대 추정 위험이 있습니다. 11월까지 분할 유입되는 75조는 외환시장 일일 거래량 대비 결코 큰 규모가 아닙니다. 환율 안정 효과는 심리적 신호일 뿐 물리적 효과는 미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단일 사건이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가정에 의존한 투자 포트폴리오는 그 가정이 틀렸을 때 얼마를 잃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4월의 세 사건이 가르쳐준 교훈입니다.